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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암의 늦은 모임, 끝내는 시간을 스스로 고르는 방법

상암에서 퇴근 후 이어지는 늦은 모임에서 자리를 지키고 싶은 사람과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,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스스로 귀가 시간을 결정하는 실용적인 대화법과 퇴장 요령을 전합니다.

밤 열한 시의 시계와 식은 안주를 보며

솔직히 제가 저녁 술자리는 아직도 어색해서 잘 모르거든요. 남들은 상암 골목 어디가 2차 명당인지 훤히 꿰고 있다는데, 저는 조금만 시끄러워져도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는 편이라서요. 괜히 맥주잔만 만지작거리면서 남들 웃을 때 따라 웃기 바쁩니다.

근데 이상하게 자정이 가까워지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막 눈물 날 것처럼 답답해요. 내일 아침 알람 소리, 밀린 업무 생각하면 속이 바짝 타들어가거든요. 그렇다고 다들 신나 있는데 저 먼저 가볼게요, 하는 순간 분위기 망칠까 봐 말도 못 꺼냅니다. 그 서글픈 눈치 보기에 휘둘려 억지로 버티다가 다음 날 퀭한 눈으로 모니터 노려보며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. 내 기분은 엉망진창인데 남들 비위 맞추느라 소중한 새벽을 버리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요.

남고 싶은 마음과 쉬고 싶은 기분의 엇갈림

상암의 밤거리에는 늘 두 가지 감정이 부딪힙니다. 가상의 저녁 장면을 하나 떠올려보면 금방 와닿아요. 근처 직장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고 해볼게요.

한 사람은 이번 주 내내 시달린 스트레스를 오늘 밤 동료들과 끝까지 털어내야만 숨이 트입니다. 2차, 3차로 이어지는 떠들썩한 공기가 이 사람에겐 구원인 셈이죠. 반면에 맞은편 사람은 오늘 나눈 대화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꽉 찼고,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신발 끈 묶고 나가야 마음이 편안합니다.

둘 다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. 밤을 붙잡고 싶은 사람은 지금의 온기가 절실한 거고, 일어서고 싶은 사람은 내일의 자기가 소중한 것뿐입니다. 서로 바라는 결이 다른데 억지로 장단을 맞추려니까 서운함이 쌓이고 눈치가 보이는 겁니다.

분위기 안 깨고 내 시간 챙기는 확실한 요령

모임 초보인 척 쭈뼛거리며 지켜보다가 깨달은 건데, 자리를 일찍 마치는 건 배신이 아니라 생존입니다. 핵심은 쫓기듯 도망치는 게 아니라 내 선택권을 덤덤하게 챙기는 데 있어요.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딱 이렇게만 해보세요.

첫 잔 부딪힐 때 가볍게 흘려두는 게 제일 속 편합니다. 분위기 무르익고 나서 말 꺼내려면 천근만근 무거워지거든요. 저 오늘 내일 오전 미팅 준비 때문에 열한 시에는 일어나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, 하고 미리 던져두는 겁니다. 이렇게 초반에 계획을 알려두면 나중에 짐 챙길 때 서로 다른 기대를 조금 덜 만들 수 있어요.

시간이 됐을 때 아픈 척이나 뻔한 집안 핑계 대는 건 진짜 최악이에요. 변명이 길어질수록 분위기만 싸해집니다. 그냥 오늘 이야기 나눠서 너무 후련하고 좋았다고 상대방 기분을 먼저 꽉 채워주세요. 그리고 가방 챙기면서 밝게 인사하고 일어서면 끝입니다.

정산도 질질 끌지 마세요. 일어서기 직전에 화장실 다녀오는 척하면서 내 몫을 미리 계산해두거나, 모임 총무한테 살짝 송금해두는 겁니다. 돈 문제까지 깔끔하게 털고 나가면 남아 있는 사람들도 뒤끝 없이 즐겁게 마실 수 있거든요.

마음을 남기고 돌아서는 마지막 한마디

자리를 뜨면서 건네는 말은 길 필요가 없어요. 떠나는 사람도 찝찝하지 않고, 남아 있는 사람도 존중받았다고 느끼는 문장이면 족합니다.

오늘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웠어요. 저는 내일 일정 때문에 아쉽지만 먼저 일어나요. 다들 남은 시간 훨씬 더 재밌게 보내세요!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. 상대방의 시간을 응원하면서 내 퇴장도 당당해지니까요.

그래도 서운해하는 눈빛이 보인다면, 다음을 기약하는 온기 한 조각만 얹어주면 돼요. 다음번엔 다음 날 부담 없는 금요일로 잡아서 제가 끝까지 자리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거죠. 굳이 긴 말 덧붙이지 않아도 진심은 다 전해집니다.

술자리 문 열고 나와서 차가운 밤공기 들이마실 때 느껴지는 그 묘한 해방감, 저는 그 순간이 제일 짜릿하더라고요. 내 기분이 편안해야 오늘 만난 사람들과의 다음 만남도 반가운 법입니다. 남의 장단에 휘둘리지 않고 내 밤을 지키는 것, 그게 결국 나를 아끼는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.